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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월을 보내며 가족을 되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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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토피아
201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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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0

[리더피아] Leadership Insight - 지윤정의 감성터치

오월을 보내며 가족을 되돌아보다

 

고양이 덕은 알아도 며느리 덕은 모른단다. 뜻밖에 쥐 잡아주는 고양이 덕은 알아도 매일 봉양하는 며느리 덕은 모른다. 부모는 집처럼 언제나 거기, 아이들은 쇼파처럼 늘 그자리에, 남편은 시계처럼 한결같이 그 박자로 움직일줄 안다. 늘 곁에서 함께하면 그 존재감도 잊고, 그 고마움도 놓친다. 남에게는 불필요한 신경을 쓰고 안부를 묻고 선물을 하면서도 가족에겐 “알지?”라는 말 한마디로 넘어간다. 내게 가장 필요한 존재이면서 가장 편하게 대하기도 하고, 가장 자주 만나기도 하지만 가장 만만히 보기도 한다.
가족에게 양적 시간의 자양분을 뿌리고 정서적인 질적 마음을 주자. 하루 세번 양치질하듯 두 눈을 보고 하루 열번 손을 씻듯 마음을 나누자. 오늘, 그들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되짚어 보자!

 

첫째, 부부 대하기
 결혼하면 판단력이 떨어지고 이혼하면 인내력이 떨어지며 재혼하면 기억력이 떨어지는거란다. 결혼 10년이 넘어가면 서로 소 닭 보듯이 하는 게 당연하고 생사 정도만 확인하면 된다는 부부들도 많다. 미혼들이 듣기에는 참 싸늘하고 냉소적인 소감들뿐인데도 결혼들은 꾸역꾸역한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할 거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이치인가. 늘 ‘애인같은 아내’를 꿈꾸지만 ‘아내같은 애인’만 늘어난다는 우스개소리처럼 우리가 꿈꾸는 이상과 현실은 너무도 괴리가 크다. 상대는 연예인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면서 나는 연예인 매니저처럼 험상궂어 있다. 상대에게 조인성 수준을 원하면서 나는 김태희 수준을 맞추지 못한다.


결혼은 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결혼 할 때 배우자에게 가장 좋았던 점이 이혼을 고심할 때 가장 결정적 이유가 된다. 점점 애착이 집착이 되고 알다가도 모를 애증의 관계로 고단해진다. 가솔린이 다 떨어진 자동차처럼 쿨럭거리면서도 멈추지 않는 이어짐이 오로지 자녀들을 어쩌지 못해서만일까. “자식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라는 외피 안을 살짝 벗겨보면 “함께 산 세월만큼 깊어진 사랑”이 숨어있다. 덮어두고 포기하면서 발효된 사랑이 곰삭으면서 엉기고 이상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 몸에 좋은 균을 만들어낸다. 우유는 금방 상하지만 요구르트는 금방 상하지 않는다. 이제 결혼에 대한 회의에 빠져있지 말고 부부를 위해 회의를 하면 좋겠다.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가정만큼 있을 때 잘해야겠다는 결심도 함께 하면 좋겠다.

 

둘째, 자녀 대하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돼”, “아예 호적을 파가라” 등의 표현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부모가 하는 협박이다. 자녀를 나의 분신이라 여기고 지극히 헌신해 온 부모 입장에서는 마땅한 주장일지 모르나 요즘 신세대들에게는 썩 설득력을 잃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의식이 점점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는 의식이 상식이 되었다. 이제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될 사람’이고 ‘딸’은 ‘사위의 아내’될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속편할지 모른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고, 머리에 이고 가도 안 힘들 것 같은 자녀에 대한 사랑에도 적당한 냉전을 유지해야 한다.


요즘 기성세대를 말초세대라고 한다. 최후로 부모를 모신 세대이고 최초로 자녀 없이 노년을 보내는 세대라는 것이다. 부모 스스로 자청하였건 자녀들이 청하였건 이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분가와 독립은 상식이 되었다. 이제 효도의 내용과 방법이 달라졌고 효도의 질량과 길이도 예전 같지 않다. 예전처럼 맹목적인 자녀키우기에 온 몸을 불살라 버리면 그것이 곧 힘만 되는 것이 아니라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자녀의 점수가 부모의 인격인 것처럼 매달리고 자녀의 성공을 부모의 성공으로 환원하는 일은 억장이 무너지게 허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탈 때 비상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보면 어른부터 산소 마스크를 착용하게 한다. 아이나 노약자부터 돌보는 것이 우선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힘이 있는 성인이 먼저 건강해야 약자를 제대로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는 메타포는 자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부모 스스로 먼저 잘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자녀를 분신으로 여기고 소유하려 하기 보다 한발짝 떨어져서 객체로 대해보자. 그것이 부모의 자유뿐만 아니라 자녀의 건설적인 독립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셋째, 부모 대하기
 치매에 걸린 시어머님이 반복하여 묻는다. “너는 누구냐?” 14년을 함께 산 며느리를 못알아보는 것이 황당하고 허망하더니 나중엔 짜증이 난다. “어머니 막내 며느리요, 주희 엄마요”를 몇번 반복하고 나서 은근슬쩍 자리를 피한다. 커가는 아들이 “저건 뭐야?”를 반복하며 질문할 때는 10번을 해도 신기하고 대견해서 지치지 않고 대답했었는데 부모님에겐 몇번도 못 견디고 귀찮다. 부모님은 자녀 키울 때 업고 안고 치우고 씻기고 다 했는데 자녀는 부모님 모실 때 여차하면 남의 손을 빌리려 든다. 오로지 내 자녀 앞에서 다시 부모의 모습을 닮을 뿐, 내리사랑은 역행하기 어렵다.


예전 어느 CF광고 중에 “우리는 괜찮다, 옆집가서 TV보면 된다”라는 카피가 큰 공감을 자아냈다. 여러가지로 불편하지만 자녀들 걱정 안 시키려고 좋게 말하는 부모님의 실상이 영상통화 앞에서는 다 드러난다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처럼 실제 상황에서도 부모님의 불편이 그대로 드러나면 좋겠건만 우리가 통역하여 듣지 않으면 영영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다. “버스 타고 지하철 두번 갈아타면 되는데 내가 혼자 갈게”라는 말은 “무릎 아프니까 좀 데리러 와달라”는 말씀이고 “딸기는 요즘 비싸냐?”라는 말은 딸기가 드시고 싶다는 것임을 헤아려야 한다. “바쁘면 오지 마라, 열무김치는 담가 놨는데……” 라는 말은 얼굴 보고 싶다는 말씀이고 “어서 빨리 죽어야지”라는 말은 “삶의 의미와 재미를 갖고 싶다”라는 뜻일 것이다. 이런 통역능력은 사랑과 관심의 깊이에 따라 적중율이 높아진다. 사람이 어른은 한번 되지만 아이는 두 번 된다는 말이 있다. 나이 들면 다시 아이처럼 돌봄이 필요한데 자녀를 키우는 반의 반만큼도 부모님에겐 신경을 못 쓴다. 자식은 어려서 부모의 발을 밟더니, 커서는 부모의 마음을 밟더라는 옛 속담처럼 내가 언제 부모님의 마음을 밟았는지 되짚어보자.

 

놀아 본 사람이 놀고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익숙치 않은 사람은 일찍 퇴근한 수요일, 쉬게 된 토요일이 낯설다. 무엇을 어떻게 누려야 할지 어색하고 불안하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강조하면서 막상 가족과 놀 소프트웨어는 별로 없다. 가족과 함께하는 가족놀이 문화를 좀더 다양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핵가족화 되면서 직계가족만이 아니라 친척까지 확대해 함께 어울리며 정체성도 확인하고 혼자가 아님을 인식하기도 한다. 가족 블로그를 만들어 서로 사진도 올리고 안부도 나누고 공통의 테마를 갖고 정기적으로 모이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 게임도 하고 영화보는 날, 대화하는 날, 외식하는 날을 정해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남에게는 재미없어도 웃어주고 함께 하면서, 가족에겐 재미있어도 허튼 위엄세우려고 뒷짐을 지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 보자. 남에게는 마음을 비우고 그러려니 하다가도 가족에겐 가혹한 잣대로 재고 나무라는 데에만 익숙해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 보자. 가족은 화풀이 하는 샌드백이 아니라 중요한 것이 들어있어서 늘 챙기는 핸드백처럼 다루어야 한다.

 

 

글 윌토피아 지윤정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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