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 동료에게 비추천 사회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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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eCONOMY] 사회어 탐구생활 동료에게 비추천 사회어 "거봐 내 그럴줄 알았어. 내 뭐랬니…”
동료의 하소연: 언어는 사회적 약속으로 정의 내린 부호가 주는 정교함의 한계 때문에 담으려는 뜻과 달리 수십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위의 상황에서도 화자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 뭐라고 라도 해주고 싶어서 위로랍시고 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청자에게는 비꼬는 것이나 책망하는 것으로 여겨졌다는데 문제가 있다. 화자는 청자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정녕 몰랐을까? 몰랐다면 센스가 무딘 거고, 알았다면 상대를 뭉갠 거다. 상대가 듣고 싶은 말과 무관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한게 아니라 스피치를 한 거다. 커뮤니케이션은 하고 싶은 말을 하는게 아니라 상대와 나누어야 할 말을 나누는 거다.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염두해 두고 하는 거다. 이제부터 상대가 내 본뜻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면서 말하자. 커뮤니케이션은 내 입 밖으로 말하는 것까지가 아니라 상대가 듣고 이해하는 것까지다. 말만 잘할 뿐 상대에게 무딘 사람은 안 하는게 나은 말까지 한다. 촉을 세워 내 말이 상대에게 의미가 있을지 살피면서 말하자. 요리책을 본다고 배가 부르지 않고 의학개론서를 본다고 두통이 가라앉지 않는 것처럼 커뮤니케이션도 책만 읽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언변만 키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매일 하고 있지만 매번 공부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한국말은 이제 잘하니 영어만 배우면 된다고 덮어둘 일이 아니다. 무엇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어떻게 나누어야 좋을지 유치원생이 자음 모음 배우듯이 신기하게 깨닫고 성찰해야 한다. 성공하면 남의 덕, 실패하면 내 탓 이런 태도는 한번은 모면할지 모르지만 다음 번에는 서로 몸 사리게 만드는 원흉이 된다. 이왕 한거 남탓 하거나 뒷북 치지 말고 서로 끌어안고 앞으로를 모색하자. 성공하면 창밖을 보고 실패하면 거울을 보랬다. 성공하면 다른 사람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밖에 대해 감사하고, 실패하면 내가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를 안을 들여다보며 성찰해야 한다.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은 앞뒤 안 따지고 밀어부친 동료의 문제가 아니라 사전에 느낀 실패예감을 설득력있게 어필하지 못한 내 문제다. 프로젝트에 실패한 동료가 무능한 게 아니라, 그런 동료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내가 무능한 거다. 진정 어깨동무하는 동료라면 ‘거봐’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해야 한다. ‘내가 뭐랬니?’가 아니라 ‘내가 충분히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말해야 한다. 위로의 정석 회사 속사정을 잘 알고 지금 내 곁에 있기 때문에 더 절실하다. 직장동료는 단순히 같은 사무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생의 절친한 친구다. 그 경계선은 같이 망가지며 질펀하게 술에 취할 때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들 때 곁에 있어주고 마음 담긴 위로를 나눌 때 허물어진다. 점점 개인주의가 되어가는 요즘, 직장에서 동료의 하소연에 괜시리 말 섞었다가 덤탱이 쓸까봐 몸을 사린다는 사람이 있다. 참 쓸쓸하고 씁쓸하다. 직장인들이 깨어있는 시간 동안 제일 많이 있는 곳이 직장이고 제일 많이 만나는 사람이 동료다. 직장은 제일 많이 마음 고생을 주기도 하지만 제일 많이 마음 위로를 주는 곳이기도 하다. 프로젝트에 실패한 동료를 위로할 때 현란한 묘수가 아니어도 좋다. 똑부러지는 해결책이 없어도 좋다. 밥숟가락도 들 수 없는 기력의 사람에게는 진수성찬이 되려 부대낀다. 그저 그의 초라하고 빈 밥상에 생색 없이 마주 앉아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될지 모른다. 그저 곁에서 그 마음을 헤아려 주고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싶다. 이제 앞으로는 어깨 너머로 어설프게 훈수 두기 보다 곁에서 진심으로 토닥여주자. 글 윌토피아 지윤정 대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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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발표·피드백 위주 '액션러닝' 콜센터 전문강사로 '우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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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준비된 강사들의 집단지성이 만들어 내는 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