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 사회어 탐구생활 - 상사가 의견 물을 때 비추천 사회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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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eCONOMY] 사회어 탐구생활 상사가 의견 물을 때 비추천 사회어
운전을 하다보면 유독 신호등의 노란불을 자주 보게 되는 날이 있다. 한 번 노란 불일 때 가까스로 건넌 날은 징크스처럼 노란불이 따라다닌다. 노란불일 때 건널까 말까를 결정해야 하는 그 순간은 20분 운전할 때보다 더 피곤하다.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를 결정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선택과 결정이 고단했던 최초의 기억은 대학교에 입학해 시간표를 직접 짤 때였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공표해주던 시간표에만 익숙해있던 고등학교 졸업자는 아직 대학교의 자유가 낯설었다. 어떤 과목을 신청해야 할지, 어느 요일에 시간을 배정하는 게 좋을지, 누가 딱 짜주면 좋겠다 싶었다. 대학을 훌쩍 졸업했건만 지금도 선택과 결정은 도망가고 싶은 숙제다.
짜장면과 짬뽕 중에 뭐가 나을지, 비빔냉면과 물냉면 중에 뭐를 골라야 할지, 된장찌개가 좋을지 김치찌개가 나을지를 결정하는 일조차도 혼란스러운데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한 의견을 달라니… 당황스럽고 황망하다. 라면 끓이는 방법도 다르고 김치찌개 끓이는 순서도 다른데 어떻게 하나를 고르란 말인가? 모두에게 먹히는 절대적인 다이어트 방법도 없고 각자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하나가 아니듯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다들 목표를 달성하려고 열심히 뛰고 있는데 ‘자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둘 중에 어떤 게 낫다고 보나?’ 라고 질문하면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 이분법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다분법적 세상에 ‘너는 어느 편이니?’ 라고 단호하게 묻는 상사를 보면 부럽기까지하다. 그걸 어떻게 한 문장으로 말해? 사실 의견을 이야기한다 한들 귀 얇고 우유부단한 상사는 의견을 듣지만 듣기만 한다. 오히려 우리의 의견보다는 외부의 의견에 더 펄럭거린다. 왜 물었나 싶게 내 의견을 묵살하여 왜 말했나 싶게 허망하다. 푹 빠져야 할 때도 있지만 쓱 빠져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이럴 땐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 후에 대세를 관망하는 게 제일 속편하다.
위기를 인식하라
하지만 우리가 답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으면 뭉툭한 답보다 날카로운 질문이라도 튀어나온다. ‘잘 모르겠습니다’가 아니라 ‘이점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이점은 어떻게 보세요?’라고 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죠’는 내 손에서 떠나 네 손으로 보내고 나는 훌훌 털겠다는 방어감이 느껴진다. 물에 빠진 부모를 살려내야 할 때 ‘전 살릴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하지 않는다. 물 깊이를 확인하고 주위에 끈이 있는지 찾는다. 내 일이다 싶고 간절하게 염원하는 일에서는 그런 방관자적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심사숙고와 책임 방기는 다르다. 이제 간절한 위기의식을 갖고 답을 모르겠으면 무엇을 모르는지 질문이라도 하자.
구조적으로 말하라
상사가 ‘임원 월례회를 없애고 부서별 주간 회의 때 임원들이 같이 참여하는 게 어떨까?’ 라는 의견에 ‘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상황에 따라 다르겠죠’ 라는 말은 상대를 참 힘 빠지게 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상황별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럴 때는 구조적 틀 안에서 겹치지 않고 빠지지 않게 의견을 제시하자. 임원 월례회 대신 부서별 주간회의가 갖고 있는 장단점과 직원 입장, 임원 입장, 회사 입장의 큰 틀이 있다면 의견을 제시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내 의견이 없다면 이 틀 안에서 질문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
‘주간회의 하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럴 것 같은데 임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이런 질문이 상사에게도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막연히 ‘괜찮을 것 같네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알아서 하세요’ 등의 발언은 상사를 고독하게 한다. 상사를 앞장세워 팔짱 끼고 관망하는 행동이다. 상사를 잘 보좌하는 부하는 상사가 선택할 옵션을 구조적으로 제시하고 그 중에 선택의 폭을 최대한 좁힌 후 각 결과를 대차대조표로 보여준다.
질문형으로 말하라
아무리 자신만만해도 질문 없이 머리 스타일을 매만지는 미장원은 불쾌하다. 아무리 멋진 디자인도 나에게 맞으려면 내 사이즈를 물어야 하고 아무리 멋진 생각도 상대에게 통하려면 상대와 맞는지 물어야 한다. 칼리 피오리나는 질문이야말로 상대를 존중하는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질문은 생각을 유발한다. 우유부단함은 댓가를 치를 각오를 하고 사려 깊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헛갈림은 의심에서 비롯되고 고심할 때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결정 보류’는 더 합리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적극적 사유의 방식이다. 사유가 미진한 채로 어느 한쪽에 가담하는 것을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심사숙고하기 위해 입 밖으로 사리분별할 정보를 찾자. 바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질문은 간접적인 의견이다. 정말 심각한 것은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를 모를 때 생긴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를 때 막막하다. 무얼 모르는지 알아야 질문할 수 있고 알고 싶은 것이 있어야 질문한다. 이제 상사가 의견을 물으면 무엇을 답해야 할지를 생각하기보다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질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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